호사가들은 가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첫문장이 무엇인가를 얘깃거리로 삼는 경우가 있다.

팜플렛 중에서는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거닐고 있다. 공산당이라는 유령이…”로 시작하는 칼 맑스의 공산당선언이 첫 자리를 차지한다. 소설에서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꼽는 사람이 많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문장이 그것이다.

철근 제강사에 ‘수익성 확보’라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유령이 배회”를 하고 있고, 저마다의 이유로 깎아 팔아 수익이 급락해 불행해 졌다는 점이 묘하게 일치한다. 또 적정한 수익을 회복하기 위해선 가격 인상 외에는 방법이 없다(서로 닮았다)는 점에서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과 묘하게 오버랩 된다고 생각하면 억지일까?

2월 철근 제강사들의 실적이 엉망이다. 일부는 적자를 기록했고, 이익이 난 업체도 소액에 불과하다. 5~10%를 남겼던 것이 아득한 옛일 같다.

제강사들은 서로서로를 원인 제공자로 몰아가고 있지만 수익이 급락한 이유는 모두 잘 안다. 더 벌고자 하는 탐욕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원동력은 더 벌고자 하는 기업의 활동이 근간이다. 욕심을 나쁘게만 볼 이유는 없다.

그러나 최근 제강사가 부린 욕심은 탐욕이다. 많은 재고와 한파, 그리고 설 연휴 수요 급감을 알면서도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욕심을 부려 서로에게 상처를 냈다. 그것도 모자라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시장을 망쳐버린 것이 2월 제강사의 풍경이다.

철근 업계 종사자라면 모두 아는 것이 있다. 하나는 가격이 하락한다고 수요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밀어내기 판매를 하면 다음달 판매도 어려워 진다는 점이다. 철근 시장은 서퍼(Surfer)가 파도에 몸을 맞기듯, 철근 시장의 흐름에 몸을 맞춰가는 것이 제강사의 생존법이다. 이 생존법을 어기면 절망이라는 바다에 던져지게 된다.

전기로 제강을 베이스로 하는 철근업체들은 원가와 품질에서 낙차가 별로 없다. 철근 시장은 혼자 비싸게 팔 수도 없고, 혼자 싸게 팔 수도 없다는 점에서 “견제와 균형”의 시장이다. 엇 비슷한 가격에 그다지 변하지 않는 점유율이 유지되는 것도 이같은 견제와 균형의 묘 때문이다. 이를 제강사가 파괴하면 어김없이 폭락이 왔던 것이 우리나라 철근의 소사(小史)다.

1월과 2월이 그랬다!

우리는 이번 철근가격 폭락이 제강사에게 약이 되었기를 바란다. 제강사들은 최근 수년간 철근 소비가 늘어나면서 생산 중심의 시대를 살았다. 그러나 올해부터 철근 소비가 줄어들 것이라는 경고가 많다. 지난 2월 처럼 급격히 소비가 줄어들지는 않겠지만 공급과잉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큰 것이 사실이다.

전환기를 앞두고 사업 전략을 재 점검해야 할 시점이 된 듯 하다. "수요에 맞는 생산" 시대로의 진입을 앞두고 제강사는 다시 한번 전략을 전환해야 할 시점에 선 것 같다.

수익성 악화라는 ‘유령’에 잡혀 사라지지 않기 위해선 수요에 맞는 생산이라는 ‘서로 닮은’ 전략으로 적정 이윤을 보존해야 할 것이다. 능동적인 감산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두 달도 안돼 10만원이나 하락하는 참극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이 2월 참사가 알려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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