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앤스틸 서정헌 대표이사 사장
▲ 스틸앤스틸 서정헌 대표이사 사장
철강 선도기업의 시장지배력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 고도성장기 철강 산업정책은 철저히 선도기업에 의존하는 산업정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일부 선도기업의 의견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산업정책을 추진하였던 것이다. 고도성장기에는 포스코가 잘되는 것이 바로 한국 철강산업이 잘되는 것이라는 생각에 큰 이견이 없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정부 산업정책은 독자적인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 산업정책이 선도기업의 경영전략 쪽으로 기울게 되어 정부의 산업정책 역량이 약화된다. 선도기업의 경영전략이 정부 산업정책을 압도하게 되는 것이다. 고도성장기에는 그래도 큰 문제가 없었다. 선도기업 중심의 투자를 통해 철강산업의 양적성장이 가능했고, 선도기업 부가가치의 일부가 여타 철강사나 유통으로 흘려가는 낙수효과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선도기업마저 생존전략으로 몰리면서 주변 철강사를 챙길 겨를이 없다. 따라서 선도기업과 여타 철강사 사이에 갈등이 심해지고 공존이 어렵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선도기업이 잘되는 것이 한국 철강산업이 잘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선도기업의 경영전략과 정부 산업정책 사이에 괴리가 생기고 갈등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제 선도기업만 잘 되게 하는 산업정책이 아니라 영세한 유통이나 수출입 임가공 모두를 잘되게 하는 정부의 산업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나라 철강산업이 사양화 단계로 들어서면서 철강통상이나 구조조정 같은 이슈들이 제기되고 있어 산업정책의 중요성이 다시 강조되고 있다. 개별 철강사의 노력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줄어들고 정부가 나서야 하는 일들이 많아진다. 그만큼 정부의 역할이 중요시 되는 것이다. 이제 철강산업 사양화와 구조조정에 대비하는 우리 정부의 독자적인 산업정책 역량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 산업정책은 구조조정 후에도 산업경쟁력을 더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그런데 개별 철강사의 시장지배력이 지나치게 강하게 작동하면 철강사간 공정한 경쟁이 어렵게 되어 구조조정 이후에 산업경쟁력이 강화된다는 보장이 없다.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위해서 철강시장의 공정한 경쟁구도가 필요한 것이다.

선도기업의 시장지배력은 개별 철강사 수익창출에는 유용한 수단이지만 철강산업 전체로 보면 결코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선도기업이 시장지배력을 남용할 때 구조조정과 같은 정부 산업정책은 어렵게 된다. 선도기업의 시장지배력 중심 경영전략과 산업정책이 갈등관계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철강사는 자신이 가진 시장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이 수익창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모든 철강사들은 자신의 시장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여전히 투자하고 규모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개별 철강사 입장에서 신규투자는 자신의 시장지배력을 강화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이제 투자로 규모를 키우고 시장지배력을 강화하는 전략은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사양화 단계에서 투자기회가 줄어들고 큰 규모의 철강사가 오히려 시장적응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덩치 큰 철강사가일수록 최종적으로 더 큰 위험비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시장지배력은 철강 선도기업의 입장에서 여전히 수익창출에 중요한 수단이지만, 산업정책에서는 공정한 경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산업정책의 중요성이 증가하면서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위해 공정한 철강사간 경쟁이 강조되는 것이다. 그런데 철강산업이 높은 수익성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전후방 산업과의 산업간 경쟁에서 우위에 서야한다. 자동차 건설 등 철강 수요산업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서는 비경쟁적 시장구조와 선도기업의 시장지배력이 오히려 필요한 것이다.

철강산업에서 선도기업의 시장지배력과 공정한 경쟁 사이에 강한 갈등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철강관련 산업정책에서 중요한 부문이 시장지배력과 공정한 경쟁 사이에 균형을 잡는 일이다. 우리나라 철강산업의 과거를 돌아보면 공정한 경쟁의 중요성을 과소평가된 측면이 많다. 향후 우리정부의 산업정책 방향은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복점적 경쟁구도하에서 선도기업의 시장지배력과 공정한 경쟁이 적당히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선도기업 중심의 철강 성장전략을 추진하여 왔다면, 이제부터는 유통 가공 수출입까지 포함하는 전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산업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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