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앤스틸 서정헌 대표이사 사장
▲ 스틸앤스틸 서정헌 대표이사 사장
지난 10월 24일 스틸앤스틸 주관 자동차강판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이 세미나에서 발표된 차강판 관련 통계자료를 활용해서 우리나라 대표적인 차강판 공급자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역학관계를 정리해 보았다.

우리나라 자동차 생산대수는 2016년 기준 423만대로 여기에 소요되는 차강판의 시장규모는 465만톤 전후로 추정된다. 당해 연도 우리나라 철강재 내수 5,700만톤에 비하면 8% 정도로 미미하지만 차강판은 철강의 꽃이라 할만큼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연간 800만대를 생산하는데 이중 60% 정도인 480만대를 해외에서 생산한다. 해외생산이 국내생산보다 더 많은 것이다. 국내에서 320만대를 생산하는데 이 물량은 국내 자동차 총생산대수의 76.5%를 차지한다. 현대기아차는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차강판의 71.9%를 계열사인 현대제철로부터 공급받는다. 정리하면 현대기아차는 국내 자동차시장에서 76.5%를 점유하고 있으며,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철강재의 71.9%를 계열사인 현대제철로부터 조달한다. 이것은 현대차그룹에서 자동차와 철강의 수직계열화가 완결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수직계열화로 인해 현대기아차의 시장지배력이 현대제철로 전달되는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자기 계열사인 현대제철로부터는 71.9%를 구매하지만, 지난 수 십년간 자동차 강판에 심혈을 기우려 왔던 포스코부터는 15%만 구매한다. 물량기준으로 현대기아차는 포스코로부터 연간 70만톤 정도의 차강판만 구매한다. 현대제철로부터 구매하는 비중은 계속 높아지고, 포스코로부터 구매하는 비중은 계속 낮아진다. 현대차와 현대제철이 차강판 가격을 결정하면 이 가격이 시장가격을 주도한다. 현대제철 유통은 현대차그룹 내에서 어느 정도 판매가 보장되지만, 포스코 유통은 해외 글로벌 철강사에 팔아야 한다. 최근에는 포스코가 코일센터에 더 많은 수익성을 요구하면서 포스코 코일센터가 물량면에서 위축되는 경향을 보인다. 차강판 연계물량이 포스코 유통에서 현대제철 유통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포스코는 900만톤의 차강판을 생산해서 27%만 국내시장에 공급한다. 생산한 차강판의 73%를 해외 자동차사에 팔아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최근 세계적인 무역규제 강화는 포스코에게 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포스코는 스스로 글로벌 마케팅 역량을 자랑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많은 한계가 있는 일이다.

현대제철은 500만톤의 차강판을 만들어 320만톤은 국내시장에, 180만톤은 해외시장에 판매한다. 해외판매도 해외에 진출한 현대기아차에 공급하기 때문에 포스코보다 영업에 대한 부담이 적을 수밖에 없다. 현대제철은 현대차그룹의 계열사라는 이유만으로 안정적인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제철의 차강판 품질이 포스코보다 좋아서 현대기아차가 현대제철의 비중을 높이는 것만은 아니다. 그룹 계열사라는 이유만으로 일부 차강판이 포스코에서 현대대철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 입장에서는 현대제철이 차강판 품질이 포스코보다 못하지 않기 때문에 현대제철 차강판을 선택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이 또한 가슴 아픈 일이다. 지난 수십년간 공기업으로 자동차강판에 주력해온 포스코의 차강판이 단 몇 년 사이에 현대제철이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이라면 포스코 내부 역량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포스코는 국내 차강판 시장을 현대제철에 내주고 해외시장 판매로 내몰리고 있다. 포스코가 만드는 고품질의 자동차 강판이 우리나라 자동차 품질경쟁력에 기여하지 못하고 해외 자동차사에 투입되는 것이다. 결국 양질의 포스코 강판을 싼 가격으로 구입한 해외 자동차사와 현대기아차가 국제시장에서 경쟁하게 되는 것이다.

철강시장의 경쟁구도는 한번 잘못 만들어지면 부정적인 효과가 오래 지속된다. 그만큼 철강산업 경쟁력에서 철강사간 혹은 전후방 산업과의 경쟁구도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경쟁구도가 그대로 자동차 강판 시장에 녹아 있다. 우리나라 철강산업의 역사를 돌아보면 포스코 독점과 현대체철의 수직계열화는 한국 철강산업 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중국에 있는 현대가아차가 어려워지면서 현대차 그룹의 수직계열화가 다시 한번 주목을 받고 있다. 현대차가 어려워지면 현대제철 뿐만 아니라 포스코 등 여타 철강사에 더 큰 타격이 될 것이다.

수직계열화의 힘이 강화될수록 현대기아치의 위기는 바로 현대제철의 위기가 된다. 현실적으로 경쟁적인 관계에 있는 다른 자동차사가 현대차그룹의 현대제철이 만든 철판을 구매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현대제철이 만든 차강판을 현대차 외 다른 자동차사에 판매하는데는 많은 제약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제철의 현대차그룹 의존도는 더욱 심화될 것이고, 현대제철은 현대차 중심의 고로사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현대제철이 독립된 하나의 고로사로 경쟁력을 가지는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대기아차가 현대제철과 포스코를 두고 공정한 기준으로 차강판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포스코가 공기업 시절 정부 돈으로 개발한 차강판에 대해서는 정부가 어느 정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포스코가 만든 차강판에 특별히 차별화된 경쟁력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포스코가 만든 차강판의 지나친 수출을 국내시장으로 유도하는 정교한 산업정책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포스코가 솔루션 마케팅 등으로 자동차 강판 수출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아직 우리나라 자동차 강판시장에서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은 편이다. 국내시장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우리나라 자동차 강판시장에서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역할분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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