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유범종 스틸데일리 기자
▲ 사진: 유범종 스틸데일리 기자
올해 국내 후판시장의 최대 화두를 꼽으라면 설비 감축 실행 여부가 아닐까 싶다. 현재 국내 후판산업은 깊은 수렁에 빠진 상태다. 주력 수요산업인 조선의 침체와 만연해진 공급과잉, 저가 중국산의 범람 등은 국내 후판업체들을 벼랑 끝까지 내몰고 있다.

정부도 지난해 ‘철강산업 경쟁력 진단’ 보고서를 내고 국내 후판설비를 단계적으로 400~500만톤 감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업계 자발적인 설비 구조조정을 종용하고 있다.

사실 국내 후판시장 여건을 보면 설비 구조조정이 필요한 사안임은 분명하다. 현재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국내 후판 3사의 총 생산능력은 1,280만톤에 달하고 있다. 국내 명목소비를 감안할 때 300~400만톤 가량의 과잉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 후판업체들은 자체적인 감산을 통해 공급량을 조절하고 있으나 사실상 그마저도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올해 후판 명목소비는 약 750만톤 수준으로 전년보다 150만톤 가량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업계 내부에서도 설비 구조조정에 대한 공감대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문제는 누구의 설비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정부는 설비 감축을 종용하면서도 그 결정은 업계 자율로 맡겨 논 상태다. 그러나 국내 생산업체 가운데 먼저 나서서 설비 구조조정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동국제강의 경우 이미 지난 2012년과 2015년에 걸쳐 포항 1,2후판을 잇달아 폐쇄하며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한바 있다. 동국제강 입장에서 보면 이제 당진 후판공장만 남은 상황에서 후판사업 철수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설비를 줄일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포스코는 지난해 10월 포항 1후판공장의 가동 중단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포항 1후판공장은 연산 75만톤 규모로 추가적인 설비 감축이 없다면 실질적인 수급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포항 1후판공장을 세울 경우 자사 타 공장의 효율적인 가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포스코가 최종적인 가동 중단을 선택할지도 여전히 미지수다.

현대제철은 아직까지 후판설비 감축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 상황이다. 현대제철은 지난 2014년까지 당진 1,2후판 설비합리화를 통해 오히려 생산능력을 350만톤 규모까지 확대했다. 현대제철은 최근 신규투자를 마친 상태라 쉽게 설비를 줄일 수 없다는 입장을 강경하게 내세우고 있다.

결국 후판 소비 급감에 따라 설비 구조조정은 당면과제로 부상했으나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여건은 녹록하지 않는 셈이다. 설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면 그 다음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자칫 구조조정 기간이 늘어지거나 제대로된 설비 감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내 후판시장은 갈수록 통제불능의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도 시장이 안정화되기까지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고스란히 감당해야만 한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우를 범하기 전에 정부와 생산업체들이 합리적이고 능동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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