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데일리 정예찬 기자
▲ 스틸데일리 정예찬 기자
강관사들의 생산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생산량을 가늠하는 수치, 그것을 우리는 생산능력, 영어로는 capacity, 그래서 흔히들 ‘캐파’라고 부른다.

강관사들의 생산량에도 한계가 있다. 우선 앞서 언급했던 생산능력이 1차적인 한계다. 물론 교대 근무를 통해 생산량을 인위적으로 늘릴 수는 있다. 하지만 공장 근무 인력을 확보하기가 어렵고, 급작스런 2교대, 3교대 변경도 어려워 생산량을 늘리거나 줄이기가 쉽지 않다.

생산량에 한계가 있다면 소재 구매량도 제한적이어야 한다. 강관은 생산 수율이 높은 편이라 인풋(input)과 아웃풋(out)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월 평균 강관 생산량과 월 평균 소재 구매량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소재 비축을 위해 구매량을 늘리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여유 자금이 넉넉해 장사하는 것이 아니라면 2~3달 정도의 재고만 가지고 있어도 소재가격이 떨어질까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평균을 회복하는 것이 통상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일부 강관사들은 자체 강관 생산량보다 많은 양의 소재를 구매하고 있다는 소식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강관 생산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열연을 추가 구매한다는 전언이다. 열연 구매량을 늘려 물량 할인 등을 받아 강관 원자재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강관 생산 분 이외의 열연은 유통시장에 판매해 추가 이익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할 수 있는 이유는 강관사들이 열연밀들로부터 구매하는 열연 가격이 일반 열연 유통업체(SSC 등)들의 구매 가격보다 낮기 때문이다. 특히 일반 구조관용 열연의 경우 품질에 대한 요구사항이 낮은 편이라 ‘오버롤’ 혹은 ‘수입대응재’라는 이름으로 좀 더 낮은 가격에 받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2~3만원의 가격차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열연 관련 담당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문제는 강관사들 뿐만이 아니라 열연밀들도 강관사들의 생산능력 이상의 열연을 공급하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관사들로부터 들어오는 매월, 매월의 구매량을 무시 못하고 마지 못해 공급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심지어 일부 SSC들의 경우 강관사들에게 코일을 팔라고 회유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담보, 여신 등 자금사정의 압박으로 포스코가 공급량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강관사들에게 손을 뻗는 경우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해관계로 얽힌 너와 나의 연결고리

문제투성이다. 마약과도 같다. 한번 맛을 본 이상, 공급자도 수요자도 연결고리를 끊기 어렵다. 사지도 말고 팔지도 말아야 할 상품이 시장에 나온 것과 다름없다. 열연을 공급한 열연밀이나, 그것에 손을 대고 중간 역할을 하고 있는 강관사들이나, 이를 구매하고자 하는 유통사나 모두가 문제다. 예전에는 상도덕이라는 명목 하에 이런 일이 없었으나 시황 하락이 장기화되던 지난 2014년부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과거에는 이런 문제가 발생할 경우 열연밀이 앞장 서 패널티를 부과하기도 했었으나, 요즘에는 워낙 시황이 좋지 않아 포스코 내에서도 실간, 조직간 열연 판매 경쟁으로 번지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실수요향 영업담당자들이 실적을 높이기 위해 자기 고객, 즉 강관사의 코일 판매를 묵인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아예 시장 활동 중 하나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결국엔 그 코일이 그 코일이다. 열연밀의 불분명한 판매 정책으로 인해 악순환고리가 탄생했다. 시장 질서를 망가뜨리고 가격의 교란을 야기한 것에 대해 열연밀과 강관사 모두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업계 일각에서는 구조관 업체들이 생산량 이상의 소재를 구매할 경우 이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하고 있다. 이는 분명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다.

또한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강관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저가 경쟁의 해결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동안 코일 판매를 통한 구매 가격의 하락을 수익성 개선 요인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추가적인 판매 가격 할인 요인으로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결국 구조관 업계가 처한 모든 문제의 해결은 철강사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 열연밀은 물론, 강관사들도 확실한 구매 정책과 판매 정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국내 시장은 더 심각한 혼란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올바른 시장 질서 확립이 올바른 산업 성장의 길이다. 서로의 이해관계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난세에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 지속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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