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걸출한 논객 중 한 명이 유시민씨일 것이다. 과거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선거에서 정동영씨는 당시 유 후보에게 "내가 어떻게 말로 당신을 이기겠는가"라는 말로 논쟁을 시작 할 정도로 유작가의 토론 실력은 익히 알려져 있다.

정치가에서 작가로 변신한 유시민 작가의 책 중 ´글쓰기 특강"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 유시민 작가는 ‘영업 기밀’ 아닌 ‘기밀’이라면서 토론과 글쓰기에 대한 나름의 3가지 원칙을 적시했다.

첫 번째 ‘취향고백’과 ‘주장’은 구별한다. 두 번째, ‘주장’은 반드시 ‘논증’한다. 세 번째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에 집중한다’가 그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난달 말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발표한 “철강산업경쟁력 강화 방안(안)”은 개인의 취향도 아니고, 공공서비스를 주업으로 하는 정부의 정책이자 한 산업의 청사진이라는 점에서 검증하고 토론 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안에 대해 언론은 현실성이 없다고 질타하고, 철강업계는 “이게 되겠느냐? 누가 하느냐?”하는 반응 일색이다.

이 안을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녹아 있고, 철강산업이 쇠퇴기에 진입해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넘길 사안은 아니다.


- 절차적 정당성과 공공성의 결여

첫 번째는 정부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수립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과 공공성이 결여 됐다고 생각된다.

정부의 정책은 공공재적인 성격이 있다. 가능하면 공개적이고, 광범위한 의견 수렴 과정이 있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한국철강협회와 같은 단체의 의견도 들어야 하고, 포스코와 같은 거대기업이나 시화공단의 중소 철강사의 임직원의 의견도 청취해야 한다. 정책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사람이나 기업을 최소화하고, 만일 있다면 그들을 위로해야 한다. 이 과정이 의견 수렴과정이고 정책의 집행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보스톤컨설팅그룹(이하 BCG)과 같은 해외 유명 컨설팅기업의 조언도 필요하다면 들어야 한다.

이번 경쟁력 강화 방안(안)은 정부가 적시했듯이 BCG의 안이 참고 됐다. 아니 참고를 넘어 사실상 정부의 안을 BCG가 만든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할 정도로 유사하다. BCG의 이번 컨설팅 프로젝트의 오너는 사실상 국내 5개 대기업이다. BCG는 이들 기업의 입장을 반영해야 할 책임이 있다. 공공성을 갖는 정부의 정책이 필자가 아는 것 처럼 만들어 졌다면 정부 정책의 공공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정부가 자료에서 밝힌 것 처럼 현재 철강산업은 글로벌 공급과잉과 무역 규제 그리고 내수 시장 침체와 막대한 수입으로 ´누란의 위기´에 처했다. 미래를 낙관하는 기업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제시한 경쟁력 강화 방안이 경량소재 개발 및 지원, 차 강판 수출 강화, 수소환원제철공법 개발이나 스마트제철소 구축 등이라면 누가 얼마나 공감을 할 수 있겠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느 철강 대기업의 사업계획이냐(?)라는 비아냥을 듣게 되는 것이고, 힘있는 대기업만 이로운 정부 안이라는 말이 떠도는 것이다.

보고서의 작성 과정을 보면 이러한 의심은 합리적인 의심이라는 확신이 든다.

- 납득도 공감도 못하는 보고서 어떻게 나왔나?

필자는 BCG의 보고서가 오염 돼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익히 알려진 것 처럼 BCG는 철근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설비 감축과 M&A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리고 몇 가지 방안 중 하나로 현대제철의 인천공장과 당진공장, 포항공장을 각각 동국제강과 환영철강, 대한제강으로 이관하고 지역 거점화 대형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안다. 이러한 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 안이 보고서에서 삭제됐다. 해당기업의 노조가 3,000명에 육박하는 연판장을 앞세워 압력을 행사한 것이 삭제의 원인이 됐다는 후문이다.

BCG가 가장 역점을 둔 항목은 후판의 구조조정이라고 한다. BCG는 전 제품을 통틀어 유일하게 3개사 7개 라인의 경쟁력을 점검하고 점수화 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고 한다. 또 회의석상에서 ‘경쟁력 순위’를 공개했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최종보고서에는 공장별 경쟁력은 실종됐다. 업계 자율적으로 400~500만톤의 설비능력을 삭감해야 한다는 주문만 남았다. 삭제된 이유가 철근 처럼 경쟁력 열위의 기업이 반발한 탓이라는 말이 들린다. 이 두가지 소문이 사실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참석자들의 말은 그렇지 않다.

결국 보고서에는 5개사와 관련된 부분은 사전 반발과 조율로 뭉텅이로 빠지거나 완화 된 것 같다. 결국 유일호 부총리는 이리 찢기고 저리 발겨진 보고서를 기반으로 "한국철강산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안)을 발표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 무엇을 할 것인가?

기업의 목표는 이익추구다. 가능하다면 경쟁력을 갖고 영속기업이 되고자 한다. 철강협회의 목표는 회원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다. BCG의 목표는 프로젝트 오너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목표는 무엇인가?

유작가의 말 처럼 우리의 주제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고,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라는 말은 변명이다. 정부의 역할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민은 정부에 세금이라는 물적 수단과 폭력이라는 공권력을 준 것이다.

한국철강시장의 생태계가 정글이 되지 않게 하는 힘은 포스코에도 현대제철에도 없다. 몇몇 대기업의 성장이 산업과 국가의 성장인 시대는 끝났다. 시장이 정글이 되는 것을 막을 힘은 오직 정부만 갖고 있다. 그래서 미래 한국 철강산업의 밑그림을 그리는 주체는 정부일 수 밖에 없다.

정부가 잊지 말고 밀고 가야 할 ´주제´는 5년 후 10년 후 한국 철강산업이 한국경제에서 부여 받은 임무가 무엇이고,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정부는 어떤 지원을 할 것인가이다.

논의의 시작은 정부가 잘 요약 정리했듯이 철강은 1)내수 산업이고 2)파괴적인 혁신이 어렵고 3)공급조절이 곤란한 산업이라는 3가지 기둥위에 서서 출발해야 한다.

정부가 지적했듯이 한국 철강산업은 기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생산의 42.6%를 수출하고, 내수시장의 39.5%를 수입재에 내 줬다. 이웃나라인 중국이나 일본과 판이하게 다른 구조다. 이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조정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산업 재편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철강산업은 중요한 변곡점에 들어섰다. 도전하고 실패할 시간이 많지 않다. 이번 한국철강산업 발전방안(안)의 수립을 시작으로 10년 후 우리 경제와 철강산업의 역할을 그려 가야 할 때다. 그리고 정부의 역할이 더욱 빛나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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