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범종 스틸데일리 기자
▲ 유범종 스틸데일리 기자
그 동안 철강산업 구조조정이 이렇게 뜨거운 감자가 된 시기가 있었나 싶다. 1973년 첫 쇳물을 뽑아낸 포스코(당시 포항제철)가 등장한 이래 한국 철강산업은 성장 일변도였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의 급성장과 글로벌 공급과잉 및 경쟁 심화 등 시장환경이 빠르게 바뀌면서 국내 철강산업 역시 고도성장에 제동이 걸리고 본격적인 사양화 길에 들어섰다.

이제 한국 철강산업의 미래는 규모의 확장이 아닌 산업 후퇴 속도를 얼마나 늦추고 버티는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지난달 말 정부가 발표한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보고서도 그 일환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정부는 보고서를 통해 향후 철강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5대 핵심전략’ 위주의 방안을 제시했다. 후판, 강관 등 수요침체가 가속화되고 있는 시장에 대한 자발적인 설비 감축 유도, 친환경 고로설비로의 전환 지원, 고부가 철강재에 대한 조기 개발 지원, 새로운 수출시장 개척 및 수입규제 대응 등이 골자다.

정부의 이번 발표는 국내 철강업계에 인식의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가 직접 철강산업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는 부분은 분명 큰 의미를 가진다. 막연했던 철강산업의 위기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인식을 명확히 한 계기며 각 기업들도 안일한 태도에서 벗어나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철강 전문기자 입장에서 볼 때 정부가 제시한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에 대해선 아쉬움도 크다. 특히 정부 주도적인 역할은 미흡해 보인다. 5대 핵심전략으로 내세운 방안들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기업들이 스스로 짊어져야 할 숙제가 대부분이다.

정부는 공급과잉 품목에 대해 업계 자발적인 설비 감축과 M&A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후 발생할 고용문제, 사회적 비용 등의 후폭풍에 대한 대안은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중국이 최근 철강 구조조정 과정에서 수반된 다양한 사회적 비용을 중앙정부가 상당부분 책임진 것을 고려하면 상이한 행보다. 과연 이러한 정책이 국내 철강기업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 적극적인 구조조정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정부가 설비 감축 방안을 내기 전 시장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다했는가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 동안 국내 철강산업은 철저한 시장논리 속에서 경쟁력이 약화된 업체들의 자연스러운 퇴출과 대형업체 위주의 M&A, 설비 축소 등의 움직임이 지속되었다. 동국제강의 포항 1,2후판 폐쇄, 동부제철의 전기로 사업 철수 등이 비근한 예다.

그러나 시장 주도의 자연스러운 조정만으로는 더 이상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운 시기가 왔다.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이는 정부가 산업정책을 통해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방향을 만들어가는 작업이 필요해졌다는 말의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기업과 시장에게만 맡기는 소극적인 정책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최근 국내 철강산업에 직격탄을 주고 있는 통상마찰 해결, 경쟁력이 약화된 노후설비에 대한 선제적인 발굴 및 지원, 고부가 철강재 개발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 등 기업들의 자발적인 설비 감축 이전에 정부가 나서 개선할 수 있는 문제들이 산적해있다.

일본 철강산업의 경우 20년 전에 이미 지금 한국의 위기를 먼저 겪었다. 물론 일본과 한국은 시장여건이 다르지만 분명 참고해볼 만한 선례다. 일본 정부도 1990년 이후 사양화 길에 들어선 철강산업을 두고 오랜 시간 적절한 대응에 나서지 못해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만 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서야 구체적인 산업전략이 수립되고 정부의 적절한 역할과 지원을 통해 현재의 안정된 산업기틀을 마련했다.

우리는 일본의 선례를 통해 똑같은 우(愚)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부는 보고서를 내놓고 손을 터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철강산업에 대한 이해를 높여 보다 구체적이고 효율적인 대안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함과 동시에 정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철강은 산업의 쌀이라 불린다. 산업의 가장 기반이 되는 제조업으로 철강이 무너지면 조선, 자동차, 건설 등 주요 수요산업들도 직격탄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철강산업의 중대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보여주기’식이 아닌 진정성과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산업정책을 펴주길 고대해본다.

저작권자 © 스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