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데일리 정예찬 기자
▲ 스틸데일리 정예찬 기자
뜬금없는 역사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시간을 거슬러 1630년대로 올라가보자.

1630년대 네덜란드에서는 수입된 지 얼마 안 되는 터키 원산의 원예식물인 튤립이 큰 인기를 끌었다. 그로 인해 튤립에 대한 사재기 현상까지 벌어졌다. 품귀 현상 탓에 꽃이 피지 않았는데도 미래 어느 시점을 정해 특정한 가격에 매매한다는 계약을 사고파는 선물거래까지 등장했다. 1630년대 중반에는 튤립 알뿌리 3그루면 집 한 채를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하니 엄청난 투기가 일어났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1637년 2월 5일 갑자기 가격이 하락세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보자면 구매자가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알뿌리의 가격이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자 전체적인 튤립 가격이 급격하게 폭락했다. 하락이 추가 하락을 부추기며 4개월만에 무려 95~99%가 빠진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의 튤립 파동(Tulip mania)은 사실상 자본주의 최초의 버블 경제 현상으로 인정되고 있다.

당시 튤립 3그루값은 집 한 채 값까지 올라갔다는 기록이 있다.
▲ 당시 튤립 3그루값은 집 한 채 값까지 올라갔다는 기록이 있다.


올해 3월부터 시작된 철강재 가격 상승세에 전세계 철강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중국 현지에서도 역대 최고 수준의 반등폭이라며 다양한 분석과 전망을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중국 철강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 철강산업은 이번 폭등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맞이하고 있다. 수입업체들의 구매난은 현재 진행형이다. 가격 인상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공급량은 점점 더 감소하고 있어 품귀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중이다. 열연코일의 경우, 오퍼시장에서 한 때 500달러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이런들 어찌하리, 저런들 어찌하리. 600달러, 700달러가 나와도 상관없다. 못 사는 건 마찬가지”라고 표현했다.

3월~4월까지만해도 오랜만에 찾아온 가격 반등 소식에 업계는 대체적으로 인상 소식을 반기는 듯했다. 하지만 수급난이 2달 가까이 지속되자 업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가격이 언제 내려갈 지 몰라 불안하다는 심리적인 부분은 제쳐두더라도, 너무 짧은 시간에 가격이 올라 철강재의 현장 엔드유저(end-user)들을 설득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한 영업담당자는 “오히려 올해가 장사하기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문제는 다음 행보를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중국의 가격 인상에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기 어려웠듯, 행여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그 이유를 찾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에서다.

한편으로는, 가격 인상이 이제는 철강업계에 독이 될 수도 있다는 평가도 있다. 가격이 너무 가파르게 오른 나머지, 플라스틱이나 목재 등 대체재들이 시장을 비집고 들어올 만한 틈새를 내줄 수밖에 없다는 견해다.

거품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진다. 대비하지 못한다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경쟁력이 있느냐, 주도권을 쥐었느냐에 있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당시에도 거품을 예견했던 일부 투자가들은 그 와중에 천문학적인 수익을 얻기도 했다.

따라서 어느 정도 수익성이 회복되었다면 다음을 위해 주도권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앞으로 언제 찾아올 지 모를 거품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철광석 가격이 저점에서 톤당 약 30달러 가량 오르는 동안, 중국산 철강재는 톤당 200달러 가까이 올랐다. 같은 기간 한국산 철강재가 20만원 이상 오른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수익성이 개선되고도 남을 수준은 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산 철강재 국내 공급 가격은 5월 가격 인상에 이어 6월 가격 인상 소식이 벌써부터 들려오고 있다. 중국산 철강재 수입을 근절하자는 구호를 외치던 기업들이 막상 호황이 찾아오자 이익 창출에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중국 욕 할 것 없다. 중국은 깡패고, P사와 H사는 양아치다”라는 인식이 공공연하게 퍼져있다.

튤립파동으로 인해 네덜란드 상인들은 빈털터리가 되었고 튤립에 투자했던 귀족들은 영지를 담보로 잡혀야만 했다. 이러한 파동은 네덜란드가 영국에게 경제대국의 자리를 넘겨주게 되는 한 요인이 되었다. “중국이 올랐으니 우리도 싸게 팔 수 없다”는 식의 영업전략이 계속된다면 중국 철강시장에 주도권을 뺏기게 될 수밖에 없다.

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 과거의 위기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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