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 가공업계가 조합 재건을 계기로 새출발에 나섰다. 매번 한계에 부딪혀온 가공단가 현실화의 문제를 ‘상생’이라는 관점으로 풀어보겠다는 의지다. 철근 시장에서 합리적인 가공단가는 더 이상 가공업계만의 고민이 아니다. 철근업계와 건설업계가 건강한 상생의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할 선결과제라는 목소리가 높다. [편집자 주]


한국철근가공업협동조합 정세현 이사장(부원비엠에스 대표)
▲ 한국철근가공업협동조합 정세현 이사장(부원비엠에스 대표)
Q> 철근가공조합의 재건을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A> 최근 몇 년 사이 철근 가공업계는 큰 변화의 시류에 흔들려왔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생업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고 조합 활동 역시 활발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아직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생존의 고민을 나누는 절박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공조합 또한 새로운 출발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적극적인 조합 활동을 이끌어갈 임원진들을 보강하고 저 역시 이사장직의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사장인 저를 포함한 저희 조합은 앞으로 가공업계 만을 위한 활동에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대내외적인 협력과 공조의 틀을 만들고, 거래관계를 맺는 모두가 바람직한 상생의 걸음을 내딛고자 합니다.

튼튼한 싹을 틔울 씨앗을 다시 뿌리는 것이죠. 철근 가공회사들의 화합의 씨앗, 거래관계를 맺고 있는 제강사나 건설사와 협업의 씨앗, 대외기관들과 공조의 씨앗을 뿌려가고자 합니다.


Q> 철근 시장에서 가공의 의미는 확대됐지만, 구조적인 문제는 오히려 깊어진 것으로 보인다.

A> 근본적인 문제는 철근 가공영업의 주체가 바뀐 것입니다. 제강사들이 영업의 범위에 가공을 포함시키면서 철근 가공이 마치 덤(서비스)처럼 되어버린 문제가 큽니다. 철근 가공을 생업으로 영위해오던 가공업계 입장에서는 생존이 달린 변화에서 주체가 아닌 주변인으로 밀려나게 된 것이죠.

철근 가공을 판매촉진의 경쟁수단으로 삼으면서 제강사 역시 수익악화의 부담을 떠안게 된 상황입니다. 자리를 내어준 가공업계는 저수익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심각한 생존의 위기를 직면하게 됐습니다.

철근 판매의 영역에 가공이 포함되면서 건설업계는 절대적인 실익을 독점하게 된 게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 철근 가공에 대한 건설사들의 태도는 ‘윤리’의 문제로 봅니다. 여기서 말하는 윤리란 받을 것은 받고, 마땅히 줄 것은 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철근 가공시장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 무엇보다 건설사들의 윤리의식과 해결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철근 가공단가 현실화의 문제에서 저희 가공업계는 항상 양보를 강요받다시피 했습니다. 한 가지 중요한 관점은 ‘양보는 누리고 있는 주체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리지 못하는 주체의 양보는 굴복일 뿐입니다.


Q> 지난 2013년, 철근 가공업계는 파업 결의나 공정거래위원회 신고 등으로 저가임가공과 불합리한 계약관계를 쟁점화 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A> 뼈아픈 기억이지만, 가공단가 현실화로 촉발된 지난 2013년의 충돌은 많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면밀한 준비와 대응이 미흡했고, 업계의 의지를 모아가는 노력도 부족했습니다.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함과 당장 살아야하는 생업의 고민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그 뒤로는 막연한 호전의 기대로 2년여의 시간을 보내온 것이 사실입니다. 가공단가 현실화의 화두가 꾸준히 거론되긴 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실정입니다. 오히려 철근 가공업은 외부의 위협요소가 더해지며 더 절박한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됐습니다. 이러한 현실이 가공업계가 사활을 건 가공단가 현실화에 나서는 이유로 볼 수 있겠습니다.


Q> 최소한의 생존마진, 가공단가 현실화를 어느 선까지로 봐야할 것인가.

A> 이례적인 주택경기 호황으로 철근 가공물량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가공업계의 열악한 환경이 개선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한꺼번에 몰리는 가공물량의 납기를 맞추기 위해 무리한 가동의 부담이 커진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철근 가공단가의 기준으로 정부가 정한 ‘표준품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철근 가공의 난이도나 인력의 숙련도에 따라 가공단가를 산정하는 건설공사 표준품셈은 저희 철근 가공업계의 현실에 비춰 봐도 매우 설득력 있는 계산법입니다. 이러한 표준품셈을 근거로 철근 가공단가의 정량화와 현실화의 고민을 풀어낼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한국철근가공업협동조합 정세현 이사장(부원비엠에스 대표)
▲ 한국철근가공업협동조합 정세현 이사장(부원비엠에스 대표)

철근 임가공업체들에게 “실질원가를 내놔라”라고 압박하는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철근 가공시장이 얼마나 철저한 갑·을의 관계로 점철됐는지를 반증하는 것이죠. 철근이나 아파트를 판매할 때 세부원가를 공개하지 않는 상식을 떠올려 볼 일입니다.

모두가 아시겠지만, 철근 가공단가는 환경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가공원가의 편차는 크지 않으며 오히려 제강사나 건설사에서 더 잘 아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가공단가의 정량화도 바람직하지만 상생의 관점에서 양보와 배려가 필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Q> 수입산 철근의 가공이 새로운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향후 가공업계나 시장의 어떤 변수로 보는가.

A> 수입산 철근의 가공확대는 저희도 주목하는 변화입니다. 어찌 보면, 수입산 철근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흐름에서 당연한 변화일 수도 있겠습니다.

철근 가공업계 입장에서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생각을 조금 바꿔보면, 철근 가공은 가장 효과적인 수입대응의 공간입니다. 가공 포함 철근 거래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는 흐름은 가장 뚜렷한 변화입니다. 이러한 시장의 요구는 수입산 철근 역시 마찬가지인 셈이죠.

철근 제강사와 가공업계 간 상생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가공업계가 돌아서지 않으면 수입산 철근 시장의 성장은 분명한 한계의 선을 긋게 됩니다. 반대로, 절박한 생존의 고민에서 가공업계가 수입산 철근 가공으로 돌아선다면 수입산 철근의 확산은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가공업계는 수입산 철근 시장의 성장에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생업을 이어가야하는 현실에서 수입산 철근 가공을 외면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상생의 관점에서 철근 가공단가 현실화에 나서야하는 더 큰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Q> 철근 가공시장의 바람직한 발전방향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다.

A>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철근 가공단가 현실화의 문제는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이 중요합니다. 제강사와 철근 가공업계, 그리고 건설사는 각각의 역할을 공유하는 공동체입니다. 혼자서만 잘되거나, 혼자서만 힘들 수 없는 관계인 셈이죠.

제강사들의 수익악화에서 가공대행의 부담이 크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철근 가공의 영역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문제는 거듭 강조한 일입니다. 제강사는 건설사로부터 저가수주의 불합리한 수익악화 고리를 끊고, 가공업계는 합당한 가공단가의 현실화를 이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각 협상주체들도 가공단가의 현실화를 위해서 합리적인 근거를 갖고 가격결정 협상테이블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철근가공업도 하나의 고유 산업 활동으로 인식하고 존중함으로써, 얽혀있는 문제를 풀고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할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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